19세기 프랑스 정치 풍자화의 선구자
오노레 도미에
어려운 환경에도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한 오노레 도미에.
주간지의 시사 만화가가 되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게 되고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뒤바뀌게 됩니다.
그 작품은 바로 석판화 <가르강튀아>.
국왕 루이 필리프 1세가 가난한 백성들이 바친 금화를
기괴하게 먹어치우는 모습으로 묘사했으며,
엄청난 세금에 대한 항의를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으로 인해 감옥에서
실형을 살아야만 했던 오노레 도미에.
하지만 도미에는 석판화, 캐리커처 조각 등 작품 양식에
한계를 두지 않고 꾸준히 비판을 이어 나갔습니다.
인상적인 풍자화를 선보였던 도미에는
점차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쇠퇴하여
안타까운 여생을 보내다 생애를 마쳤습니다.
사회의 위선을 거침없이 풍자하고,
기득권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으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화가입니다.
"보라, 여기 한 명의 선한 인간이자
위대한 미술가이며, 최고의 시민이었던
도미에가 잠들어 있다."
오노레 도미에의 비문
Honore Daum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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